현대 바둑의 아버지 - 오청원9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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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wu0gY546 댓글 0건 조회 1회 작성일 21-01-27 07:32본문
펨질하면서 댓글다는데 의외로 바둑에 관한 글을 써달란 분이 왕왕 있어서...차분하게 풀어보려해.
참고로 오청원이란 사람은 우칭위안(吳淸源)이야. 한국의 중국어표기법에 의하면 우칭위안이 맞지만! 편의상 오청원이라고 할게 ㅠㅠ
마오쩌둥과 모택동을 모두 다 알고있는 아저씨맨들은 나를 이해해줄거라 믿어!
바둑은 중국으로부터 시작해, 한국을 거쳐 일본까지 넘어간 멘탈스포츠야.
실제로 기록을 보면 요순시대부터 시작했단 말도 있고, 춘추전국시대와 우리나라의 삼국시대에도 바둑을 둔 기록이 있지.
그만큼 바둑은 역사와 전통이 오래됐어.
혹시 지금 바둑이 몇줄인지 아는 사람이 있어?
혹시 세본사람은 없겠지? 바둑판은 19줄이야.
그렇지만 과거엔 17줄도 있고, 11줄도 있었어. 나도 기원서 바둑을 배울땐 11줄부터 시작했어.
19줄 바둑이 정립되었던건 일본의 영향이 커.
뭐? 바둑이 중국에서 한국과 일본으로 건너간거라며? 왜 중국보다 일본 영향이 큰거야?
일단 중국과 한국에선 줄에 관계없이 마구잡이로 즐겼던 경우도 있어.
그렇지만 원나라시절(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바둑교본은 현대에도 애용할정도로 잘 만든 책이야. 손자병법처럼 말이지!
왜? 중국인들은 그냥 바둑을 싫어한걸까?
쨘!
당시 중국지도자^^는 바둑을 없어져야할 해악, 악습이라고 판단, 억압하기 시작했어!
당연히 중국은 바둑의 볼모지가 되어가고 있었지.
그러던중....베이징에 묘한 소문이 돌아!
어린 소년이 베이징에서 돌을 가장 잘둔다고말야!
이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이노우에 고헤이 당시5단이 직접 중국으로 넘어가.
그리고 이 소년에게 1승1패의 전적을 기록해.
바로 이 소년이 글에서 말하고자하는, 현대바둑의 아버지 오청원이야.
비록 1승1패지만 프로를 이겼다는것 자체로도 엄청나게 대단한 일.
당대의 천재 하시모토 우타로 당시4단은 그 길로 바로 중국으로 건너가, 오청원을 일본으로 대려가려했어.
하시모토4단은 오청원과 대국을 둔 뒤, 기보를 본인의 스승인 세고에 당시7단에게 보내줬는데,
세고에7단은 보자마자 깜짝놀라며 이 친구를 무조건 일본기원으로 대려와야된다고 일본기원에 주장하기 시작했어.
일본기원은 뜨뜻미지근한 반응이었어. 왜냐면 당시 보수적인 일본사회내에서 타국인이 일본기원의 왕좌를 차지한다는건...무슨말인지 알지?
그치만 세고에7단은 "예도에는 국경이 없다"라는 말로 강력히 주장, 기어이 오청원을 일본으로 대려와.
참고로 이 세고에7단은 후에 세고에9단이 되고, 우리나라 바둑의 아버지 조훈현9단의 스승이 돼.
혹시 히카루의 바둑(고스트 바둑왕)에도 나왔던 내용인데, 흉내바둑을 알아?
말 그대로 상대가 두는걸 따라서 두는거지. 처음엔 가운대화점이 돌을 두고말야.
당시 작중에선 천재가 범재에게 당하는데 그림처럼 멋지게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줘.
이 기보처럼 당시 오청원은 대국장에서 흉내바둑을 두기 시작했는데, 흑이 백을 따라두다가 그만두면 흑이 무조건 유리하다는 거였어.
실제로 그 생각은 맞았고 대국도중 도망치거나 따지는 기사들도 나타나.
근데 이게 계속되면 바둑은 선공망겜이 되어버리겠지??
물론, 옛날사람들도 선공이 유리하다는것쯤은 알고있었어. 그래서 흑과 백을 번갈아서 10번씩 두곤했지.
하지만 프로바둑이 생기면서 그런식으로 오랫동안 둘 순 없었어.
오청원은 그러한 허점을 꽤뚫은거지.
결국 일본의 혼인보전에서 최초로 덤을 주기 시작하고, 이 덤이 다듬어지며 현재는 6.5집을 주기 시작하는게 국룰이 됐어.
하지만 오청원의 업적은 이런 룰의 개편이 아냐.
엄밀히 말해서 이러한 룰의 개선은 오청원뿐 아니라 다른사람들로도 하여금 일어날 수 있던거였거든.
그가 현대바둑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유는 "신포석"때문이야.
야스나가 하지메, 기타미 미노루9단과 함께 "신포석법"이란 책을 발간하는데, 말 그대로 새로운 포석을 제시한거지.
이는 오랜시대부터 이어져온 일본의 바둑을 상대로 선전포고한 샘이야.
이를 바탕으로 꾸준히 연구에 연구, 연구를 한 결과 오청원은 세계제일의 바둑기사로서 이름을 남기게 돼.
참고로 2014년에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바둑에 대한 연구를 계속했다하니 그의 열정에 대해 감탄할 뿐이야.
그의 사제(같은 스승을 둔 후배)인 조훈현 9단은 이런말을 남겨.
바둑은 일단 천재가 태어나야하고, 그 천재가 피나는 노력을 해야한다. 이세돌은 독특한 기풍을 가진것이지, 진정한 의미에서의 천재는 아니다. 나의 사형인 오청원9단은 천재면서, 그만큼 엄청난 노력을 했다. 그는 한손으로만 책을 너무많이봐서 손가락이 휘어버렸다. 스승님이 말하길, 한번은 너무 바둑공부만 한다고 야구장에 보낸적이 있었다. 그런 와중에서도 그는 야구는 보지않고, 오로지 바둑생각뿐이었다. 그분은 올해로 101세지만 지금도 검토실에서 이렇게둬야지, 저렇게둬야지 말하곤 하신다.
참고로 스승인 세고에9단은 오청원이후 누구도 제자로 들이지않다가, 한국의 조훈현9단을 제자로 들여.
오청원이 스승의 눈높이를 얼마나 높혔는지 짐작할만한 대목이면서 조훈현9단의 재능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라 생각해.
다음글은 인류의 대표 이세돌과 알파고에 대해 글을 적으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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