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호전 : 전차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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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tyB6q124 댓글 0건 조회 5회 작성일 20-03-10 12:44본문
영국은 참호전으로 고착된 전선을 돌파하기 위해 당시 다목적 용도로써 개발된 홀트 사의 수송용 트랙터를 기반으로 하여 전차라는 새로운 무기를 개발하였다.

먼저 무한궤도를 최초로 장착한 프로토 타입의 전차로써 리틀 월리라는 결과물이 개발되었다. 그러나 리틀 월리는 참호를 건너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한계로 인해 실전에 투입되지는 못했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마침내 우리가 흔히 1차 세계 대전의 전차의 대명사로써 알고 있는 마크 전차가 등장하게 되었다. 영국은 1916년 9월 15일, 솜 전투에 49대의 전차를 최초로 투입한 것을 시작으로 이후 계속해서 전선에 전차를 투입하였다.


< 전선을 돌파 중인 마크 전차의 모습 >
영국은 전선에 지속적으로 전차를 공급하기 위해 꾸준히 전차 생산량을 늘려나갔으며 1918년 여름까지 영국은 약 2,600대의 탱크를 제조, 전선에 투입하였다.



특히 1917년 11월 20일에 있었던 캉프레 전투의 경우 대량의 전차를 투입한 최초의 전투였는데 이 전투에서만 영국은 476대의 전차를 투입하였다.


한편 프랑스도 1915년 후반부터 전차 개발을 시작하여 결국 르노 FT 경전차를 개발했다. 르노 전차의 경우 특히 최초로 회전식 포탑을 적용한 전차로 주목 받았는데 1918년 말까지 프랑스는 약 3,00대 이상의 전차를 생산하였다.


반면 독일은 영국이나 프랑스에 비해 매우 뒤쳐지는 모습을 보였다. 독일도 영국과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A7V 전차를 개발, 생산에 들어갔으나 전쟁 말기까지 20대만 생산하는데 그쳤던 것이다. 따라서 독일은 전쟁 내내 영국과 프랑스 전차를 노획하여 운영하는 모습을 보였다.


< 전복된 독일 A7V 전차의 모습 >


그렇다고 해서 당시 전차가 마냥 만능의 무기였던 것은 아니었다. 전차 자체의 신뢰도가 상당히 떨어져 전선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작동을 멈추는 경우가 매우 비일비재했던 것이다. 캉브레 전투의 경우만 봐도 영국은 476대의 전차를 투입했지만 전투 첫날이 끝날 무렵 이미 절반 이상이 작동을 멈춰버렸다.

또한 전차 장갑 자체도 기관총탄에 의해 구멍이 날 정도로 매우 얇았다. 물론 이는 장갑 보완 및 개량을 통해 점차 보완되어 갔지만 그 전까지 독일은 속도 느린 영국과 프랑스 전차를 상대로 수류탄과 화염 방사기, 대전차 라이플을 통해 영국과 프랑스의 전차들을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 파괴된 마크 전차와 사망한 승무원의 모습 >



< 파괴된 마크 전차와 영국군 시체 >
제 1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전차가 주역이 되는 일은 없었다. 위에서 언급한 당시 전차 자체가 지니고 있었던 기술적 한계 때문인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당시의 전술 자체가 보병 위주로 이루어지다 보니 전차는 단순히 보병을 지원하는 보조 역할에 그쳤던 탓이다.
전차가 주역이 된 것은 제 2차 세계 대전부터였다.
본래는 지난 글인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참호전 시리즈를 끝낼려고 했는데 모아 둔 자료가 아까워서 하나 더 쓰게 되었습니다 ㅎㅎ 방금 축구 끝났는데 우승으로 마쳐서 기분이 좋네요. 우승까지 선수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ㅎㅎ
참조 사이트 : 임페리얼 전쟁 박물관 사이트(https://www.iwm.org.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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